IZ*ONE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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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ONE의 축제

2020.02.28
Special

IZ*ONE의 축제

'FIESTA'는 "때가 왔어 오랜 기다림을 끝내"로 시작해 "It’s my fiesta"로 끝난다. 원래대로라면 지난 11월 들을 수 있었어야 했던 작품이지만, <프로듀스> 시리즈와 관련된 논란 끝에 3개월이 지나서야 만나볼 수 있었던 [BLOOM*IZ]의 타이틀곡은, 자신의 시작과 끝에 배치해 둔 선언조의 노랫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글 | 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사진ㅣ@official.izone 페이스북


# 화려한 색깔들, 단호한 명암

'FIESTA'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리고 앨범의 전반적인 비주얼 콘셉트에서 우선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총천연색으로 눈을 물들이는 색깔들이다. 빨간색을 중심 컬러로 활용했던 '라비앙로즈 (La Vie en Rose)'나 보라색을 기조로 군데군데 민트색의 포인트를 줬던 '비올레타'와는 달리 축제의 절정을 알리는 듯한 'FIESTA'는 어느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색을 눈에 새기며, 그에 맞춘 것처럼 트랙의 전개 역시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다. "색색의 꽃가루가 흩날리고"로 시작되는 프리코러스부터 모래사장 위에서 계속해서 불타는 불꽃처럼 날뛰는 신시사이저로 코러스를 마무리하는 분위기의 고조는 확실히 이전의 IZ*ONE에게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화려함, 어쩌면 격렬함이다.

화려함을 대가로 단일함을 내준 색깔 대신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강렬한 명암이다. 천사 날개를 단 권은비의 얼굴에 비치는 차가운 백색의 스포트라이트, 빛나는 히토미와 와인잔의 성을 덮은 광택의 어둠, 혹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검은 레터박스와 화면의 대비에 이르기까지 'FIESTA'의 명암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뚜렷하고, 나는 여기서 모종의 "단호함"을 느낀다. "여러 색깔들로 더 내가 빛날 때면 / 매일 그려왔던 진짜 내 모습 가까이"라는 가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화려함이 그저 또 다른 콘셉트의 하나로 그치는 화려함이 아닌, 그 화려함을 이전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격렬한 에너지로 이어 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화려함과 격렬함 사이를 잇는 것이 지금 이 순간 IZ*ONE이 지닌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 듯한 단호함이다. 이들이 구태여 "지금이라고"라는 가사를 곡 속에서 하나의 포인트로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총천연색의 화려함과 명과 암의 단호함은 'FIESTA'만이 아닌 앨범 전체로 이어진다. 잘 만든 댄스홀 사운드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DREAMLIKE'와 'AYAYAYA', 통통 튀는 전형적인 걸그룹 팝을 들려주는 'SPACESHIP'과 '우연이 아니야' 등 IZ*ONE이 잘해 왔던 곡부터 보이그룹 힙합의 문법을 일부 차용한 듯한 'EYES', 퓨처 하우스의 신비한 그루브를 IZ*ONE 풍으로 멋지게 튜닝한 'OPEN YOUR EYES'에 이르기까지 [BLOOM*IZ]는 이제까지의 미니앨범과는 달리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곡도 스킵하기 어렵게 만드는 높은 집중력과 함께.


#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앨범을 들으면서 가장 놀랍고 반가운 점은 IZ*ONE과 프로듀서진이 자신들의 네임밸류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징후가 곳곳에서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것을 "놀랍고 반갑다"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슬픈 이유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프로젝트 그룹들이 그동안 보여줬던 내용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I.O.I와 Wanna One멤버들이 좋은 퍼포먼스와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들이 단순히 그 당시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트렌드를 쫒아가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것이 실현되지 못했던 것을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IZ*ONE은 단순히 "많은 인기를 얻은 멤버들을 모아 놓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는 안이한 경로를 따르지 않고 있다. "색깔"을 주제로 한 중심 콘셉트는 이제는 단단한 기반이 된 느낌이며, 타이틀 트랙들 역시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면서 멤버들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이들을 "<프로듀스> 출신 그룹"이 아닌 "IZ*ONE"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가장 커다란 원동력이 되며,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걸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스펙트럼을 열게 만든다.

걸그룹의 전형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전형성이 야기할 수 있는 안이한 부분을 뛰어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IZ*ONE이 이 어려운 길을 지금 가장 훌륭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룹이 아닐까 하는 나의 추정은 이번 [BLOOM*IZ]를 통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난 시작이야 / 더 기대해봐도 좋아"라는 노랫말에 대해서 좀 더 기대를 걸어 보게 된다. 축제는 시작된 참이고, 아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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