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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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위대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 여성 거장 21인의 삶과 철학을 만난다!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현대 미술의 태동까지 여성 거장들의 삶과 예술을 생생하게 담았다. 또한 미술의 영역을 남성이 독점한 회화와 조각에서 공예, 디자인으로 확장했다. 회화와 조각, 공예와 디자인 간의 위계질서는 여성을 예술의 주류에서 배제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차별과 억압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21명의 여성 미술가를 통해 미술사의 빠진 퍼즐을 맞춰나가는 진진한 여정을 시작해볼 수 있다.
작가정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역사를, 동대학원에서 미술사와 현대 미술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며 미술 관련 도서들을 번역했다. 위대한 걸작을 남기고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된 여성 미술가들과 그들 앞에 놓인 다양한 유형의 편견과 차별, 모순을 꼬집은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해 2019년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연재를 묶고 보완한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가 2020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천문학자인 남편과 함께 쓴 《그림 속 천문학》이 있으며, 현재 《한국일보》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뜻밖의 미술사와 예술가들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를 연재 중이다.
목차
- · 작가의 말_걸출했던 여성 거장들을 찾아서
1부 가부장 수레바퀴 아래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 조각, 그 금녀의 문을 두드리다-프로페르치아 데 로시
·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진 초상화의 귀재-마리에타 로부스티
· 여성 영웅들을 캔버스에 소환한 ‘여자 라파엘로’-엘리자베타 시라니
· 전문 화가의 길을 개척한 풍속화의 대가-유디트 레이스테르
· 18세기 유럽을 사로잡은 여인-앙겔리카 카우프만
· 여성의 공간과 세계를 그린 인상주의의 두 거장-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
2부 편견과 억압을 담대한 희망으로 바꾸다
· 운명은 만들어나가는 것-소포니스바 앙귀솔라
· 고정된 성 역할을 걷어차고 직업 화가로-라비니아 폰타나
· 성폭력 피해자에서 불세출의 여성 화가로-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350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온 정물화-클라라 페테르스
· 탐험 정신으로 빚어낸 과학과 미학의 결합-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오직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로자 보뇌르
·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의 관찰-파울라 모더존 베커
· 거침없이 통념을 깨부순 행동하는 페미니스트-수잔 발라동
· 각성한 여자에게 보이는 것들-한나 회흐
3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
· 렘브란트 그림보다 비싼 종이오리기 작품-요아나 쿠르턴
· 직물 디자인을 예술로 끌어올리다-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
· 세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된 가난한 소녀-로즈 베르탱
·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을 만든 여자-카린 라르손
· 녹색 정원의 작은 신-거트루드 지킬
책 속으로
그녀는 어떻게 대리석 조각에 필요한 전문적 기술을 습득했을까? 데 로시가 어떤 방법으로 조각 기술을 익혔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씨앗 조각을 통해 필요한 기술을 연마했던 것 같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데 로시는 여자는 조각을 할 수 없다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조각가의 꿈을 키웠고, 남자들처럼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정상적인 조각 기술을 익힐 수 없자 씨앗에 조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조각가가 되었다. _p. 25
데 로시는 특히 동료 화가 아미코 아스페르티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가 그녀의 명성을 시기해 근거 없는 험담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여성이 인체 해부학에 능통하면 방탕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데 로시가 남성의 육체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성적으로 난잡하고 행실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비방했다. 이 때문에 데 로시는 평판이 나빠졌고 그녀의 작품은 남성 미술가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팔렸다. 바사리도 그녀의 작품이 아주 헐값에 팔렸다고 말했는데, 이는 아미코 아스페르티니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스페르티니는 당시 볼로냐를 이끄는 핵심 화가 중 하나였는데,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데 로시를 모함하고 나쁜 소문을 냈던 것이다. _p. 30
마리에타는 많은 초상화를 그렸으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매우 적다. 더구나 그녀 스스로 서명을 한 작품은 고작 한 개에 불과해 대부분 틴토레토나 다른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전해져왔다. 그녀의 초상화가 당대 누린 엄청난 인기와 수년간 매일 아버지 작업장에서 일한 것을 고려할 때, 현재 그녀의 작품이 몇 개 남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마리에타는 그야말로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화가의 대표적 예다. _p. 37
프란스 할스의 작품 중 수작으로 평가되던 〈즐거운 커플〉은 19세기 말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코르넬리스 호프스테드 데 그루트에 의해 결국 레이스테르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그토록 극찬하던 이 작품이 할스가 아닌 한 무명 여성의 그림으로 밝혀지자 미술사가들은 그림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F와 H가 조합된 할스의 서명과 JL과 별 마크로 구성된 레이스테르의 모노그램은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도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이 할스의 그림으로 오해받은 것 역시 여성 화가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니었을까?_p. 60
카우프만은 많은 장르의 그림을 그렸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역사화가로 인식되기를 원했다. 역사화는 회화의 범주에서 가장 우월하고 지적인 분야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술 아카데미는 미술가들을 단순 기술자나 아마추어 견습공이 아니라 학식 있는 이론가로 양성해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고 했다. 또한 역사화와 종교화를 회화의 최고 분야로 두고, 초상화,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 순서로 미술 분야의 위계질서를 세웠다. 당연히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의식이 강했던 카우프만은 역사화를 그리고 싶어 했고, 역사화가 남성에 의해 독점되어 여성은 덜 중요한 분야로 밀려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복잡한 알레고리와 서사, 고결하고 도덕적인 테마를 가진 역사화를 그리려면 성서 와 고전 문학, 예술 이론에 대한 깊은 교양이 요구되었고,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도 필수였다. 누드 데생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던 카우프만은 역사화를 그리기 위해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_p. 77~79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리조는 화가로서 남자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모리조는 1874년부터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앵데팡당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품했다. 1880년 인상파 전시회에서는 비평가 알베르 울프 등 많은 이들이 모리조를 인상파 화가 중 최고로 평가하기도 했으니, 그녀의 자의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_p. 88
카사트는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대신 여성들을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존재로 품위 있게 표현했다.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작품들은 마치 마돈나와 아기 예수를 그린 종교화의 구도를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카사트가 육아를 여자라면 누구나 쉽게 해내는 그림자 노동으로 보지 않고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로 생각했음을 드러낸다. 남자의 사회생활만큼 존중받아야 할 일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자애로운 마돈나의 모습과 카사트의 그림 속 어머니가 다른 점이라면 이상화 되지 않은, 현실적이고 정직한 일상의 어머니라는 점일 것이다._p. 99
남성 화가의 보조자에 불과했던 여성 화가들에게 앙귀솔라의 성공은 여자도 전문 화가가 될 수 있다는 매우 고무적인 전례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최초로 ‘화가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로서 예술가의 자부심을 명확히 드러낸, 근대정신을 가진 혁명가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널리 알려진 최초의 국제적 여성 화가로서, 라비니아 폰타나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같은 다음 세대 여성 화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앙귀솔라가 그 시대에 했던 것, 즉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어머니, 아내로서의 역할이 아닌 전문 화가로서 사회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공고히 한 것은 오늘날 페미니스트의 활동이나 이념과도 다르지 않다. 지금도 미술사가들에 의해 앙귀솔라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편견의 동굴에서 발굴되고 재평가되고 있다. _p. 116~117
젠틸레스키가 그린 강인한 유디트와 달리 남성 화가들 이 그린 유디트는 다분히 온순하고 부드러우며 성적 매력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들 그림 속의 연약하고 우아한, 혹은 교태 어린 자세의 여성이 애국심에 불타 그런 위험한 일을 수행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유디트가 아름답기는 했을 테지만, 적어도 적장의 목을 벨 정도의 결의와 강건한 정신이 얼굴에서 만큼은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_p. 141
어느 날 그의 아내가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해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도대체 여성 미술가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그는 아내의 뜻밖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여성 미술가의 작품 을 찾았지만 전시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곧장 수장고로 달려가 페테르스의 작품들을 꺼내왔는데, 얼마 뒤 미술관 관장이 여성 미술가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그에게 자문을 구했고, 운명처럼 페테르스를 추천하게 됐다고 한다. 이리하여 400년 전의 화가는 21세기 우리 앞에 다시 돌아왔다. _p. 147
메리안이 수리남에 도착한 것은 그녀가 쉰두 살 되던 해였다. 17세기 후반의 쉰두 살이란 지금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아마도 일흔 살쯤은 되었을 나이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녀는 여행 비용을 위해 255개의 작품을 팔고 네덜란드 당국에 탐사 지원 신청서를 냈다. 처음에는 나이가 많은 데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지만, 탐사 경비를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난 뒤 마침내 둘째 딸과 함께 2개월간의 험난한 뱃길에 오를 수 있었다. (중략) 열대의 혹독한 기후 속에서 허름한 집을 빌려 매일 보트를 타거나 걸으면서 농장으로, 숲으로, 강으로 돌아다니는 그녀를 보 고, 현지 백인 정착민들은 ‘미친 여자’라며 수군댔다. _p. 166~167
카셀 대학 교수인 울리히 쿠체라가 말했듯이 메리안은 현대 생물학의 기초에 이바지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과학사에서 무시되었던 것이다. 당시 메리안은 ‘숙녀답지 않다’, ‘지나치게 설쳐댄다’, ‘거칠다’, ‘독립적이다’ 등 사회적 편견과 비난에 시달렸다. _p. 174
보뇌르는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19세기 중반에 유행한 멋진 드레스는 그녀의 활동 패턴과 맞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야외로, 도살장으로, 가축 시장으로 쏘다니며 작업할 수 있었겠는지를. 남들이 뭐라든 그녀는 평생 남자 농부들이 입는 셔츠와 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은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또한 남자들처럼 담배를 피우고 사냥도 했다. _p. 180
매우 보수적인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감추지 않고 대범하게 사회적 편견에 맞섰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봐도 놀랍다. 그녀는 시대와 사회가 규정한 규범 밖에서 오직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르며 살았다. 사회적 통념을 깨는 보뇌르의 행동은 종종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이는 여성으로서의 제약을 뛰어넘고자 한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_p. 192
모더존 베커의 누드는 기존 누드화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몸에서 벗어나 여성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는가를 그리려 했던 것이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 이후, 수잔 발라동과 프리다 칼로도 전통적인 여성 누드의 규범을 뒤엎는 방식으로 여성의 몸을 그렸다. 이 들은 모두 남성의 성욕의 대상, 타자화되고 상품화된 몸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 자신의 관찰과 정체성을 그린 화가들이었다._p. 199
결혼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미술 학교를 수석 졸업한 재기발랄한 딸에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됐으니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그녀를 요리 학교에 보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가, 부모가, 딸과 여성들에게 요구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아를 포기하는 것을 분명한 태도로 거부했다. 가사 노동을 최대한 줄였고, 아틀리에를 얻어 미술 작업에 몰두했으며, 어느 정도 예술적 성취를 이룬 다음에 아이도 갖겠다고 선언했다. _p. 204
다다이즘은 기존 사회의 체제와 가치에 저항하며 출발한 혁명적인 운동이었지만, 남성 다다이스트들은 유독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기존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었다. 주요 멤버인 한스 리히터 역시 회흐를 “돈이 부족한데도 (다다 예술가들을 위해) 어떻게든 샌드위치, 맥주, 커 피를 마련해준 좋은 여자”로만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남자들이 그녀를 예술적 동지가 아니라 먹을 것이나 챙겨주는 심성 좋은 여자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준다._p. 232
그녀의 디자인은 세계의 식물들이 재현된, 일종의 세계 식물 지형도였다. 대체로 사람들은 책을 통해 식물과 씨앗 품종에 대해 과학적 지식을 습득했지만, 패션 역시 식물학 지식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징검다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패션 디자인을 통한 식물학 지식은 특히 왕립학술원 같은 단체로부터 배제된 일반 여성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가스웨이트가 디자인한 직물의 드레스를 보면서 이국적인 식물에 대한 지식을 대화에 활용했으며, 이국의 식물을 통해 유럽을 넘어 다른 대륙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_p. 255
출판사 서평
남성 중심의 예술 문법에 질문을 던진 여성들
가부장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다
여성이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없었던 시절, 척박한 환경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운 미술가들이 있었다.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는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여성 조각가로서 그림과 시, 회화, 음악 등 다양한 공부를 했으나 특히 조각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여성은 있어도 조각을 하는 여성은 없었다. 조각은 거친 망치와 끌로 작업해야 하는 데다 육체적 힘이 요구되어 남성이 독점한 분야였고, 조각가가 되려면 남자 견습생으로 북적이는 작업장에서 수년간 훈련을 해야 했는데, 정조가 중요시된 시대에 여성에게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금지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여성이 참여할 수 있었던 예술 작업이라고는 공예, 태피스트리와 자수, 수채화 등이 전부였다. 데 로시는 과감하게 ‘금녀의 문’을 두드렸다. 조각 작업장에 들어갈 수도, 값비싼 대리석을 구할 수도 없었지만 버려진 과일 씨앗을 모아 그 위에 조각을 하며 독학으로 조각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마침내 산페트로니오 성당 파사드 조각 공모전에 입상하고,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라는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풍속화가 유디트 레이스테르는 스물네 살에 여성은 단 두 명만 가입할 수 있었던 권위 있는 화가 조합에 들어가 빼어난 걸작들을 남겼다. 특히 프란스 할스의 작품 중 수작으로 평가되던 〈즐거운 커플〉이 네덜란드 미술사학자에 의해 레이스테르 작품으로 판명되면서 한동안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런가 하면 인상주의 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명실공히 직업 화가로 자리매김한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도 있었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 ‘색채의 거장’으로 불리었으며, 카사트는 여성들을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존재로 묘사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걸작 뒤에는 견고한 남성 중심 예술 문법이 작동했다. 데 로시가 조각가로 이름을 날리자 동료 남성 화가는 그녀가 인체 조각, 특히 남성의 인체 묘사에 탁월한 것은 성적으로 문란하기 때문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렸고, 데 로시는 모든 공공 작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그토록 극찬하던 프란스 할스의 작품이 무명 여성 화가의 그림으로 밝혀지자 미술사가들은 그림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레이스테르를 프란스 할스의 모방자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는 어땠을까? 그녀들은 인상파 전시회에 수차례 참석하며 인상주의 회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 인상주의 회화의 동의어 같은 존재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같은 남성 화가들이 차지했다. 특히 모리조는 860점의 작품을 제작한 전문 화가였지만 그녀의 사망 서류에는 어이없게도 ‘무직’이라고 기입되었다.
이처럼 남성 중심 미술계에 맞선 여성들의 분전은 대체로 ‘지는 싸움’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비록 지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 미술가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의 시초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의 원동력이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편견과 억압을 담대한 희망으로 바꾸다
자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의식하거나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말과 행동으로 편견과 억압에 맞서 변화와 희망의 마중물이 된 화가들도 있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열일곱 살 무렵 아버지의 동료이자 자신의 그림 선생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부당한 심문과 고문, 길고 힘겨운 재판을 겪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이후 젠틸레스키는 성서와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통받지만 강한 여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주체적 여성들을 그리며 자신을 피해자 자리에 두지 않고, 자신이 겪은 차별과 고통을 그림을 통해 폭로하며 독립적인 여성 화가로 성장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최초의 모더니즘 여성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누드 자화상을 그렸다. 미술사에서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남성의 시각을 만족시키는 쾌락의 대상으로만 그려져왔다. 모더존 베커는 자신의 누드를 그리며 여성의 몸이 표현하는 관능성을 제거하고,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는가를 명확히 나타냈다. 화가들의 그림 모델로 활동했지만 ‘그려지는 대상’에서 ‘그리는 주체’로 자기 삶을 바꾼 수잔 발라동 역시 자화상 속에 각진 얼굴, 여러 겹으로 늘어진 복부 주름살 등 불완전한 몸을 과장하지도 이상화하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며 여성의 몸을 주체적 인격을 가진 존재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시도들은 어떤 억압 속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담대한 목소리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수백 년 만에 수장고에서 빛을 본 세기의 걸작부터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여성 거장까지
마침내 다시 쓰는 미술사 절반의 이야기
이 책은 특히 죽은 뒤 수백 년 만에 수장고에서 다시 발굴된 세기의 걸작부터 폄하와 차별로 점철된 예술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여성 거장까지 두루 다루며 불완전하고 기울었던 미술사를 온전하게 복원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17세기 플랑드르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이자 정물화의 개척자였던 클라라 페테르스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건 지난 2016년, 사후 350여 년 만이다. 앤트워프 왕립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에서 열린 그녀의 첫 전시에는 정계, 문화계 등 각계 인사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17세기 여성 거장의 ‘맛있는 정물화’를 보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최초의 곤충학자이자 용감한 탐험가, 정교한 동식물 수채화의 동판화를 남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도 250년 만에 다시 빛을 본 여성 거장이었다. 그녀가 1705년 출판한 동판화 삽화집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는 한 동물종과 그것이 숙주로 삼는 특정한 식물의 상호관계를 밝힌 실험적인 곤충도감이자 꽃과 곤충 등 각종 동식물을 세밀한 묘사로 재현한,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걸작이다. 메리안이 죽으면서 과학사에서도 미술사에서도 잊혔던 이 화집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직물 디자인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18세기 영국의 직물 디자이너 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부터 렘브란트 그림보다 비싼 종이 오리기 작품을 만든 요아나 쿠르턴,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오트쿠튀르의 창시자가 된 로즈 베르탱,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개척자로 인정받은 카린 라르손, 시력을 잃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자연을 캔버스 삼은 ‘정원의 화가’ 거트루드 지킬까지 주류 미술에서 비켜나 있던 공예와 디자인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여성 미술가들 역시 놓치지 않고 함께 다뤘다.
여성 미술가들은 미술을 통해 삶의 부조리에 맞서고, 욕망의 목소리를 따라 거침없이 통념을 깨부수며 마침내 위대한 걸작을 창조했다. 그녀들을 다시 기억하고 재발견하는 것은 미술사의 절반뿐 아니라 어쩌면 인간 역사의 반을 다시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기본정보
ISBN | 9791190492768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6월 17일 |
쪽수 | 304쪽 |
크기 |
146 * 215
* 24
mm
/ 52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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