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Japan 내한공연 후기

컬쳐&스테이지

X-Japan 내한공연 후기

2011.11.05

안녕. 더 크로스에서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시하군입니다.
멜론에 글을 쓰는 건 참 오랜만이군요! 실은 얼마 전, 제대하고 얼떨떨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하군에게 멜론에서 아주 괜츈한 제안을 해 왔더랬습니다.

‘X-Japan 내한공연 좋은 자리 티켓 주면 공연 리뷰 줄텨?’

나...이런 어이없는 제안을 봤나...감사합니다. 아리가또 쌩유-다.

어릴 때는, ‘엑스제팬’이라고 하면 왠지 TOKYO DOME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집에서 10분 거리인 올림픽 공원에서 그걸 볼 수 있다 하니 뭔가 이상하더군요. 공연이 8시 시작이긴 하나 X-Japan 콘서트는 공연 전에도 볼거리가 많으니 일찍 가자는 생각으로 6시 30분에 도착. 예상대로 이미 공연장 주변은 장사진이었습니다.

공연 전에도 볼거리가 많다는 건 바로 이런 분들 때문이죠. 어김없이 이번 공연에서도 이런 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코스프레 언니들 너머 공연장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었는데요, 보컬을 제외한 멤버들의 리허설 소리가 벽을 뚫고 나와 더욱 기대 만발. 보통은 이렇게 입장 직전까지 리허설 하지 않을 텐데...

관객들이 공연장 밖에 바글바글한 시간까지 리허설이 진행된 것은, 역시 공연 자체가 지연된다는 이야기였을까. 8시부터 공연 시작인데, 7시 40분이 넘어서야 관객 입장을 시작하더군요. 멀리서 온 관객들이 오랜 시간 줄을 서 있었으니 입장하자마자 화장실에 긴 줄이 생기고...

이 올림픽 공원이란 곳이, 경기장 근처엔 야외 화장실도 마땅찮고... 올림픽 공원에서 공연은 빈번한데 관객 배려시설이 부족한 편입니다. 올림픽 공원 측에 뭘 바라지 말고 그냥 저처럼 공연장 근처에 집을 장만하시는 게 빠를 거라 봅니다. (난 20년 전부터 엑스가 이곳에서 공연할 줄 알고 미리 이 근처에 살고 있었다고! 그건 절대 우연이 아냐! 말하자면 선견지명이라고..커흠)
8시 20분경에 안내 멘트가 나오더군요. ‘4개국에서 모인 스태프들이 리허설을 진행하느라 공연 시작이 지연되었다. 8시 40분에 공연을 시작하겠다.’라는. 뭐...그런가 보다 했습니다만.

8시 50분이 되어도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기다린 공연인 만큼, 몇 십분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는 공연이긴 하나, 이쯤 되니 슬며시 불안해 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생각나는 거죠.

X-Japan의 멤버 요시키가... 리허설 중 부상을 당해 공연이 취소된 이야기라거나
X-Japan의 멤버 요시키가... 척추 헤르니아로 인해 모든 투어 일정을 취소한 이야기라거나
X-Japan의 멤버 요시키가... 도시락으로 나온 카레가 맵다는 이유로 리허설을 취소하고 집으로 간 이야기라거나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

여러 가지 새로움이 있었던 공연이기도 했는데 그 중 가장 새로웠던 건 변화된 ‘사운드’였습니다. 우선은 새로운 멤버가 된 리드기타 SUGIZO(杉原有音)의 기타 톤이 기존 멤버였던 故HIDE와는 현저히 다른 묵직한 톤이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음악의 중간 대역이 상당히 부스트 되어 있었습니다. 드럼의 스네어나 피아노 등도 예전보다 묵직해져 있었고...그러다 보니 상당히 파워풀 해진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음부는 무겁지 않게 잡았으므로 요시키의 BASS DRUM이 보다 명확하게 들리는 형태였죠.

또 사진에서 보이듯이 엔지니어가 서양인(이름을 모르겠어!;;)...아마도 그날 사운드의 뉘앙스로 봐서는 영국 사람일 듯한데, 물론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본격적인 리뷰 전에 사운드를 짚고 넘어간 이유는 재 결성 이후 발표한 ‘Jade’ 같은 곡들이 기존의 히트곡들보다는 무거운 사운드고 예전 히트곡들을 연주할 때도 사운드의 묵직함을 위해 ‘멜로디’의 서정적인 전달을 약간은 포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 결성된 X-Japan이 향후 보여줄 음악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음 파트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예전 히트곡들 그대로 우려먹으면서 콘서트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라 팬들에겐 큰 의미가 있는 거라 봅니다.

암전 이후 오프닝 음악이 흐르면서 스크린에 'X'마크가 떠오르고 곧이어 멤버들의 등장이 이어졌습니다. 예전 DAHLIA 투어 때부터 사용되어온 "X-Japan-Japan-Japan-Japan"하는 무한 반복이 상당히 짧아졌더군요.(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

ㅇㅇ튠즈에서 꽤 괜춘한 성적을 거둔 ‘Jade’가 첫 번째 곡. 12월의 탄생석이 Jade이기 때문에 12월 생인 Hide를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많았죠. 공연 초반에 보컬 사운드의 미들 하이 영역대가 강하게 잡혀 있었는데(두꺼워진 기타와 스네어를 뚫고 나 오기 위한 조처인 것으로 생각 됨) 덕분에 ‘Jade’를 비롯한 신곡들은 아주 임팩트있게 전달받았습니다.(횽들 아직 안 죽었구나! 소리가 제 입에서 나왔다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에게 이 노래야말로 진정한 오프닝 일 듯. 94년 파란 밤 하얀 밤 콘서트 때 발표돼서 해체 직전까지, 대부분의 X-Japan 콘서트 오프닝은 ‘Rusty Nail’이었죠. 특히 신입멤버 스기조의 파워풀한 기타 솔로는 일품이었습니다. 기존의 매력과 새로운 매력의 결합을 보여주는데 상당히 적절한 곡이었습니다.

겨우 2곡 했을 뿐인데 갑자기 요시키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솔로를 시작, 좀 의아했지만 ‘Silent Jealousy’의 전주였습니다. 이 곡은 92년도에 발표되었고, 형식은 80년대 후반의 스피드 메탈 형식을 갖춘 곡인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운드가 상당히 바뀌어 있기 때문에 아련한 향수와 새로움을 동시에 주는 곡이었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역시 사운드가 무거워 지면서 예전의 날카로운 멜로디 라인과 기타 솔로라인 자체의 카타르시스가 약간 덜 한 느낌이 든다는 것. 동양적인 정서는 아직 멜로디 위주인데, 역시 지금의 X는 세계무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부터 ‘Drain’이라는 곡을 할 때는 요시키가 빠졌었죠. 요시키는 빠져서 솔로 무대를 준비하는 거였는데 이번엔 스기조도 빠진 상태로, 토시, 파타, 히스 3인만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예상한대로 ‘Drain’때 빠져있던 스기조의 솔로 무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시키의 피아노와 깔맞춤한 크리스탈 일렉 바이올린을 들고 나왔는데, 스기조의 일렉 바이올린은 이미 90년대 Luna Sea 시절부터 등장하고 있지만 솔로연주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스기조의 바이올린 솔로 도중에 요시키가 등장해서 피아노 협주를 시작했는데, 이게 점점 서정적인 멜로디로 가더니 쿠레나이의 테마로 변하더군요. 이 또한 감회가 새로운 것 이, 예전의 공연에서는 쿠레나이의 시작 전에 故히데의 아르페지오 연주에 맞춰 토시가 노래를 부르다가 ‘쿠레나이다!’를 외치는 것이 팬들에게 익숙한데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서 그 형식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저 역시 저런 식으로 시작되는 ‘紅 / Kurenai (다홍)’는 상상을 못 해봤습니다.

요시키의 한국어 멘트 전에 이 공연이 아시아 투어의 첫 번째 공연이고, 이 무대를 X나게 기다려 왔다는 영어 멘트가 있었다.(상당히 수줍은 목소리로 Fucking이란 단어를 썼음) 그리고 한국말로 ‘사랑해!’를 여러 번 외치다가 다음 곡으로 넘어감.

신곡인 ‘Born To Be Free‘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었는데요, 사운드는 ‘Jade’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멜로디 라인은 훨씬 쉬운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 메탈 쪽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X-Japan 특유의 싸이키델릭 함은 살아 있는... 사실, 쿠레나이 전에 ‘Week End’가 나오지 않아서 내심 ‘Week End’를 기다렸지만. 아하하.;;

드디어 요시키의 솔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요시키 솔로는 기존의 드럼 솔로와 피아노 솔로를 섞어놓은 컨셉이었는데요, 우선은 드럼 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투 베이스 드럼과 화려한 테크닉, 엄청난 속도, 척추에 무리를 줄 정도의 퍼포먼스 등 영상으로 보던 그대로더군요.

요시키의 크리스탈 피아노에서 ‘아리랑’이. 한국 팬들은 큰 선물을 받은 셈인데, 정말이지 X-Japan 공연에서 아리랑 합창을 들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는! 비록 아리랑만큼은 악보를 보고 치는 것 같긴 했습니다만, 합창까지 유도할 만큼 노래를 파악하고 있더군요.

영화 [SAW4]의 삽입곡이자 X-Japan의 재 결성을 알린 곡이기도 한 ‘I.V.’의 도입부가 흐르고 토시의 트레이드 마크인 관객 선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토시가 한국어로 “소리 질러!”를 여러 번 외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급기야 요시키의 객석 투어가 시작. 경호원들이 진땀 빼는 시간이죠. 요시키는 "We Are X!"를 외치며 스탠딩석을 한 바퀴 다 돌고 무대로 올라갔습니다.

‘X’라는 곡은 콘서트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곡이죠. 이 곡을 연주할 때 관객들이 손을 X 자로 모으고 점프를 뛰며 "WE ARE X!"를 외치는 것은 X-Japan 콘서트의 상징과도 같으니까요. 그리고 이 곡의 간주 때에 항상 멤버 소개를 하는 게 X-Japan 콘서트의 관례 같은 거죠. 이날은 멤버 소개 때 요시키, 파타, 스기조, 히쓰, 토시 외에 이제는 고인이 된 히데와 타이지의 이름도 호명되어 감동을 주었습니다.

X-Japan 콘서트에서 앙코르 전 BREAK TIME은 꽤나 긴 편입니다. 그 시간 동안에 스크린에 독특한 코스프레를 하고 온 관객들을 비춰준다던가, 관객들끼리 ‘Endless Rain’을 합창한다거나, 파도타기 응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아 이날은 파도타기 응원을 유도하는 남자 관객을 경호원이 제지하는 센스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었죠. X-Japan 콘서트를 공부하고 온 경호원이라면 그 남자를 제지하기보다는 경호했어야죠! ㅋㅋ
쉬는 시간 동안 주로 이런 옷을 입고 오신 언니들이 화면에 많이 잡힙디다.

보도가 꽤 많이 되었던데 ENCORE무대 시작할 때 요시키가 색동저고리를 입고 등장했습니다. 한국어 멘트, 아리랑 연주, 색동저고리까지. 쑥스러워하는 요시키를 토시가 관객 앞으로 떠미는 컨셉은 여전.

한복을 상당히 빨리 벗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요시키와 토시의 멘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시키는 히데와 타이지 역시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했음을 시사하며 오늘날 그들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고 했고, 또 지난 3월에 있었던 일본 대지진 때 한국이 도와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토시의 “우리 같이 불러요!”라는 한국어 멘트가 끝나자마자 ‘Endless Rain’의 전주가 시작되었고 멤버 전원이 무대 중앙 계단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는데 ‘Endless Rain’의 연주 시에 관객들의 대 합창이 이어지는 것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요시키의 나레이션이나 2절 부분은 SKIP하고 바로 브릿지와 간주로 넘어 갔는데요, 이번 투어의 컨셉인지 보컬인 토시의 성대보호를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토시가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목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긴 했어요. 2절 파트 없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관객들의 합창도 좋았습니다.

원래 ‘Art Of Life’라는 곡은 30분짜리 대곡인데, 이날 공연에서는 피아노 간주부터 시작되어 약 10여분 간 연주되었습니다. 요시키 피아노 맞은편에,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여성 키보디스트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며 원곡에 있던 2대의 피아노 연주 효과를 내더군요. DVD로는 확인 할 수 없었던 일명 ‘깔아주는’ 사운드의 실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키보디스트가 스트링과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는 거. 재결성 콘서트 때는 이 곡에서 히데의 홀로그램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공연의 대미는 ‘Forever Love’였는데요, 실제로 연주된 것은 아니고 AR이 틀어진 상태로 관객들과 사진 찍고 인사하고 마지막 파이팅을 보여주는 무대죠. X-Japan의 콘서트 대미는 항상 이런 형태인데, 예전엔 ‘Say Anything’이나 ‘Tears’를 주로 쓰고 ‘Forever Love’는 라이브로 하는 경우가 많았죠. 공연 내내 전매특허의 발라드는 ‘Endless Rain’ 하나뿐이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음악적 변신을 꾀하고 있는 듯하니 어쩔 수 없네요. 요시키가 다시 한번 객석에 내려와서 인사를 나눴고요, 마지막에 태극기를 들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공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大, 大, 大 선배들의 공연에 총평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는지 모르겠으나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총평이라 씁니다. 간략한 총평을 한다면, ‘기술적인 부분이나 퍼포먼스 등 모든 부분에서 데뷔 30년을 향해가는 팀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라고 말하고 싶군요. 화려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었습니다. X-Japan의 재 결성 이후 계속되어온 투어에서 합을 맞춰온 멤버들과 스태프들의 호흡이 빛을 발하는 거겠죠. 이 팀은 이미 ‘특별히’ 돈을 많이 쓴 연출이 아니어도 최대한의 감동을 끌어낼 줄 아는 겁니다. 부럽더군요.

음악적으로도 제2막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좋았는데요, 보통 레전드급의 밴드가 전성기를 누리고 나면 거기서 커다란 변화 없이 공연수익 같은 것으로 현상 유지를 하는데 반해 X-Japan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이 현재의 트렌드나 패러다임에 들어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밴드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더 길게 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공연에는 10대 20대도 있었지만 퇴근을 마치고 온 넥타이 부대들도 있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온 주부님들도 있었고요. 이런 건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들이죠. 이건 오랜 세월을 버텨낸 아티스트만이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음악성이 뒷받침 되어야 하겠죠. 아이돌 열풍 속에 갈 곳을 잃어가는 한국의 밴드 뮤지션들이 참고해야 할, 그리고 희망을 가져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하 / 뮤지션

시하는 2003년 데뷔한 그룹 The Cross의 리더로서 기타, 피아노,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만능 뮤지션입니다.